지금으로부터 한 5,6년 전인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소진되어 가다가 결국 위에서 피가 흐르고, 밤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에 잠도 잘 못 이루고, 물만 먹어도 토하는 지경이 되었다. 몸에서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는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거였다. 뭔가 숨을 쉴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의대 미술 동아리 50주년 행사에 출품도 할 겸 그림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후 미술 선생님께서 전시를 추천해 주셔서 보게 된 첫 전시가 지금까지도 간간히 회자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굿즈’ 전시였고, ‘반지하’같은 대안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들도 접하게 되었다. 같이 데리고 간 친구들은 솔직히 황당해 하였고, 나 역시 현대 미술은 상당히 난해하고 생경하다고 느껴졌지만 그 기괴하고 기묘한 지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어 계속 찾아 다니다 보니 전시장과 작가에 대해 조금씩 윤곽이 잡히게 되었다. 돌아다니다가 언젠가부터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한두 점씩 사모으기 시작한 게 이번 전시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아직 컬렉터라고 불리기에는 낯 뜨거운 수준이다.

왜 내가 그때 업무 스트레스와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미술로 갔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깨닫게 된 점 중에 하나가 수집한 작품들 가운데 인물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고, 추상 작품을 포함해 이미지들 중 상당수가 주술사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원시시대 주술사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영혼을 불러내어 사냥을 할 때 초자연적 힘에 호소하고, 외부의 힘으로부터 부족민들을 보호하거나 아픈 사람들을 치료를 하는 화가와 의사의 역할을 동시에 했다는 점에서 비록 현대에 와서는 분리되었지만 미술과 의술은 분명 통하는 지점이 있다. 어쩌면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 내 위의 통증이 무의식을 각성시켜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원시 시대 주술사의 영혼을 일깨운 것은 아닐까..
그동안 억압된 세계에서 헤매다가 작품들과 조우하게 되면서 주술사의 마력에 이끌려 자유와 창조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되었고, 그들은 내 안의 억눌려왔던 진정한 자아를 찾으라는 속삭임을 보내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자아를 찾아 통합하기 위한 작업을 다시 진행하기로 결심하였고, 최근에 내 자신의 개인 분석을 거의 20년 만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간의 분석을 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너무 남성성이 우세한 상태로 살아왔으며, 이제 나의 무의식은 그동안 한구석에 쳐박아 두었던 잃어버린 여성성을 되찾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림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묵묵히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작가님들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전시를 기획하여 보여주시는 분들, 그리고 특히 경험이 일천한 내게 컬렉터 전시라는 멋진 기회를 마련해주고 세심하게 신경써주신 에이라운지 이승민 디렉터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들의 작업들을 통해 정신 차리고 치유 받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걸 알면 막막하고 지칠 때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하여 부끄럽지만 그동안 모은 작품들을 한번 펼쳐보려 한다.
박주미 (컬렉터, 정신과전문의)

이번 전시는 에이라운지가 여름을 맞이하여 기획한 특별전으로, 기존 상업 갤러리의 판매 전시에서 벗어난 일종의 번외 전시이다. 많은 이에게 있어서 예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높아가지만 막상 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 나아가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왜일까? 아마도 미술이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달리 진입문턱이 높은 것은 아닐까? 이 전시는 이러한 의구심에서 시작되었다.
컬렉터 3명이 일종의 릴레이 식으로 자신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개인의 각기 다른 사연과 미술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비롯된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컬렉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목적을 둔다. 참여하는 한 컬렉터는 자신만의 테마를 설정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시대를 초월하는, 또 다른 이는 동시대 작가라는 시대를 지정하여 출품작을 꾸려냈다. 이처럼 은밀한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컬렉션을 살펴봄으로써 관람객들은 미술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내가 소장하고 싶은 작품 등을 자연스럽게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누군가는 미술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고, 그 경험에서부터 그만의 새로운 컬렉션이 시작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승민(에이라운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