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다.’

순간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어 몸이 차갑게 굳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다 누군가의 서사가 한낮 변명과 구실로 우리를 *호도하는 것이 되었나 한숨을 삼켰습니다.

너 같은 애들 많이 봤어, 더는 당하고만 살지 않을거야 같은 말들이 그 앞에 왔으려나 싶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나는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시인은 시집의 한 챕터에 ‘이건 모두 한때 내가 사랑해서 썼던 것’이라 이름을 붙이더군요.

작업, 길고 끈질기게 작가를 감싸고도는 잔상들의 집합들을 따라가 봅니다. 또렷했으나 끝내 세상 밖으로 미끄러져 들어오지 못한 미완의 구상들, 이미 세상에 한번 던져졌지만 한 번의 전시라는 이름 뒤로 손쉽게 휘발되어버리기엔 그 울림이 여전히 묵직한 작업들. 우리는 그 미완과 미련, 그리고 지속의 열망 사이 어디쯤에서 멈춰 섭니다.

이번 전시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바로 그 ‘지나갔으나 끝나지 않은 것들’과 미처 도래하지 못한 것들을 소환합니다. 한때 뜨겁게 사랑한 언어와 형태들, 도중에 멈추어져 마음의 부채처럼 얹혀 있던 프로젝트의 부산물들, 그리고 오래전에 수행되었으나 새로운 시간의 겹을 입고 또 다른 소명과 의미를 되찾아가는 서사들,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미래서사들이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7인의 작가—김미경, 양윤화, 이민재, 장지아, 최선, 한성우, 흑표범—는 각자의 궤적 속에 남겨져 있던 당시의 시간들을 다시 작동시킵니다. 이들에게 과거의 파편은 현재에도 여전히 뜨겁게 동요하고 있는 진행형의 문장들입니다. 작업의 부산물과 비하인드의 기록, 잊혀졌던 수행의 순간들은 예술가가 감내해 온 애정의 크기를 입증하는 간절한 흔적으로 재구성됩니다.

김미경 작가는 아무런 조건 없이 선물을 전하는 인디언 문화에 영감을 받아, 미술이 아낌없는 마음의 매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020년 ‘키미렐라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선물이 되어 사람들 사이로 각자의 여정을 떠났던 작품들은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처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 변화와 왜곡, 희망과 좌절이 한데 섞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양윤화 작가는 언젠가 물질의 옷을 입고 실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무겁고도 가벼운 퍼포먼스 구상안 두 점을 좌대 위에 올립니다. 종이를 잘라 붙이고 천으로 박음질한 연약한 스케치지만,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 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는 오렌지향처럼 선명하고 다른 어떤 것보다 단단합니다.

이민재 작가는 독일과 서울을 오가며 쌓여 간 전시 설치 부산물들을 시지프스처럼 전시장 안으로 끌고 들어와 적재합니다. 해체되고 분해된 구조물 속에는 여전히 그가 가쁘게 내쉰 숨과 공포가 짙게 머물러 있으며, 동시에 그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 열쇠 같은 문이 형태를 잃지 않은 채 버티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와 함께 스스로에게 무겁고 소중한 책들로 전시장의 좁은 복도에 낮고 무해한 바리케이트를 세우고 관객에게 서사를 건넵니다.

전시의 첫머리에서 선봉의 깃발처럼 우리를 이끄는 장지아 작가는 예술과 삶이 결합하는 필연적인 순간을 보여줍니다. 수행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었던 영상이 훗날 작가의 처녀작인 <예술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으로 부상하고 스스로조차 독립된 작품이 되리라 예상치 못했던 순선한 기록 속에서, ‘작업을 지속해야만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마음’과 ‘그럼에도 계속하고 싶은 열망’이 번져 나가는 순간을 선명하게 포착합니다.

최선 작가의 <나비>는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 폭식으로 생명을 조롱하던 풍경을 목격한 뒤, ‘인간 내면의 공통된 아름다움’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아보고자 시작한 작업입니다. ‘날숨’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만으로 인간과 예술의 의미를 만들어 온 나비는, 십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성별, 나이, 인종, 직업, 지역과 국경을 넘어 다양한 이들 사이를 유영해 왔으며 이제 그 대장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작가는 오래전 마음 깊이 품었던 조선적(朝鮮籍) 출신 청년의 얼굴을 되새기며, 나비의 긴 여정의 끝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성우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마치 목공소에 쌓이는 톱밥처럼 가득 찬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듯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립니다. 그간 종종 등장했던 구상의 형상 속에는 그가 걸었던 산길, 이전 세입자가 남긴 이름 모를 꽃벽지, 혹은 길 위에서 죽은 새의 흔적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대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화면 사이로 작가는 상처로 붉어진 자신의 목덜미와 오렌지를 가만히 쥔 손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눈길이 머물렀던 자리들에 함께 마음을 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여전한 그의 방식으로 전합니다.

흑표범 작가의 <일곱 개의 시계>는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촬영된 희생자의 사진을 낡은 벽시계 위에 붙이고, 훼손된 신체 부위에 유화 물감과 보석을 덧입히며 애도를 물질로서 수행해 온 작업입니다. 14년이 지나 최근 작가는 작품 속 희생자를 직접 수습했던 이를 우연히 만나며 과거 작업의 의미를 새로이 짚어보게 됩니다. 죽음으로 멈춰 선 줄로만 알았던 시계의 초침을 그분과 함께 다시 돌려보고자 하는 바람과 믿음을 안고, 예술적 애도와 현실의 돌봄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 호도.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감추거나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말. 한자 풀이로 보면 풀 호(糊)와 바를 도(塗)가 결합하여 풀을 바른다는 뜻으로, 벽의 흠집을 근본적으로 보수하지 않고 풀이나 진흙을 덧발라 임시로 가리던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글/ 빈집(@bin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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