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Silent Laughter

고요한 웃음

2023. 7. 6. - 2023.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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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 아래의 소리들 Sounds under the surfaces

서피스(surfaces) 또는 표면. 크리스 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평면 작업들을 ‘서피스’로 분류한다. 그의 평면 작업들을 어떻게 칭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작가의 표현을 따르기로 하였다. 크리스 로의 서피스들은 유기체 같은 형상들로서 작업이 거듭될수록 땅에 심은 씨앗처럼 자라나 성장하여 변신하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한다. 또 대체로 장방형의 색면 레이어와 자유로운 곡선 드로잉이 몇 겹으로 중첩되는 구성을 보여준다. 크리스 로는 이 서피스 작업들을 드로잉, 전사, 판화 등 여러 기법을 이용하여 펼치는 자유로운 2차원 평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하였고, 특정한 제목을 부여하지 않은 채 익명에 가까운 작업들로 제작하다가 작업을 거듭하면서 개별 제목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부여된 작품제목은 어떤 상황이나 인물의 심경을 전달하는 묘사하는 글귀들이다. 즉 크리스 로의 서피스는 다층의 레이어로 된 시각적인 평면(visual plane)이면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메신저(messenger)이기도 하다.

우선 크리스 로가 서피스에 사용한 복사, 전사, 판화 기법은 1960년대에 개념미술 전시를 기획했던 세스 시겔롭의 책 형태의 전시 《제록스 북(Xerox Book)》이나,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같은 작가들이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만든 작업들을 연상시킨다. 당시 다량의 이미지를 복제, 재생산할 수 있는 최신 기술에 예술가들이 주목한 것이다. 원본-복제 이미지의 의미에 대해서는 미묘하게 입장이 달랐다. 예를 들어 세스 시겔롭은 전시장소로부터 자유로운 전시를 표방하며 복사기를 이용해 책 형태의 전시를 만들었는데, 그는 이 방식이 개념미술을 재생산 및 확산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작가들에게 동일한 지면을 할당하고 여기에만 수록하는 작품을 만들 것을 요청하였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얼마든지 복제 가능하게 하여 원본 개념을 부정하였다. 광고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앤디 워홀은 당시 광고에 많이 사용된 실크 스크린 기법을 활용하여 상품, 재난, 죽음, 유명인사들의 이미지를 복제하는 작업들을 진행하였다. 그는 이미지의 반복을 중요한 형식 요소로 사용했는데, 그에게 반복의 작용은 의미를 빠져 나가게 하는 것인 동시에 어떤 감정이 생겨나게 하는 것에 대한 방어이기도 했다.¹ 그는 “정확하게 똑같은 것을 더 많이 보면 볼수록,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지게 되고, 기분은 점점 더 좋아지고 멍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내 그림들과 영화들, 그리고 나 자신의 표면을 봐라. 거기에 내가 있다. 그 배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하거나, 또는 “나는 기계이기를 원한다”고도 하여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텅 빈 주체로 이미지화 하기도 하였다.² 인물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할 때에는 색상에 변화를 주거나 기계적인 오차가 발생하는 상황을 역이용하여 동시에 여러 점의 에디션을 판매하는 마케팅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크리스 로의 이미지 제작 과정에도 원본의 복제와 변형이 끝없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크리스 로의 서피스에서는 이미지의 원본과 복제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해볼 수 있을까? 그는 개인전 《우리같은 도둑》의 전시도록(2022)에 ‘프로세스 다이어그램’을 수록하고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이미지의 변환 과정을 도식화하였는데, 여기서 이미지가 미디어를 거쳐가는 과정을 ‘도둑’ 개념에 빗대었다. ‘마크메이커는 애니메이터에게 훔치고, 마크메이커는 프린터에게서 훔칩니다. 애니메이터는 마크메이커에게서 훔치고, 애니메이터는 프린터에게서 훔칩니다. 프린터는 애니메이터에게서 훔치고, 프린터는 마크메이커에게서 훔칩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모든 것에서 훔칩니다.’³ 여기서 ‘도둑’은 작가가 이미지 변환 방법에 익살스럽게 빗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전시의 이미지 제작과정에 대해서 다섯 단계에 걸쳐 꽤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제일 첫 단계인 A 단계에는 오리지널 마크메이킹을 인쇄, 움직임으로 전환시키고, B 단계에서는 반복을 통해 원본의 아우라와 분위기를 쫓는 시도를 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은 마크메이킹을 디지털화 하여 인쇄, 움직임을 반복한다. C단계는 움직임 방법에 집중하고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마크메이킹을 만드는 것에도 집중한다. D단계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하는 반복 단계이고 인쇄와 마크메이킹을 혼합한다. 그리고 E단계는 순수한 마크메이킹의 인쇄 단계로 다양한 표면과 플랫폼에 인쇄가 시도된다. 이렇게 해서 제작된 작품들은 모두 비슷한 단계를 거친 것인지, 아니면 중간 단계의 산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작품 캡션에 표기된 제작기법과 실물 이미지를 통해 유추해 볼 따름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작가가 이미지를 전환시키는 몇 가지 방법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이미지를 확장시키고 이미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또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들은 변환의 중간 과정으로 머물기보다는 그 자체로 유기체처럼 존재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조형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 세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 세 개의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 세 명의 도둑이 있습니다》(2023)에서 크리스 로는 인천의 쉬, 서울 성북구의 새공간, 그리고 더 인터넷이라는 세 개의 공간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시간, 공간, 물질을 키워드로 하여 세 공간을 각각 구성하였다. 이 전시에서도 그는 도둑이라는 개념을 작업에 활용한다. 여기서 도둑은 온순하고 섬세한 도둑, 즉 범죄를 연상시키는 도둑이 아니라 윤리적으로는 의심을 살 수도 있을 정도의 섬세함을 지닌 도둑이다. 이 오묘한 도둑 개념은 난폭하거나 공격적이지 않고 온건함을 표방함으로 해서 오히려 도발적이다. 그리고 전시의 주요색인 노란색 역시 도발적이다. 노란색은 따뜻하고 생기발랄한 색상이지만 경고의 의미도 포함하는 모순적인 색상이기 때문이다. 노란색이 주는 이 양가적인 심리는 공간 연출에서도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공간에 작품을 비치한 후 노란 라인 조명과 모니터의 빛을 통해 색을 강조한 인천의 쉬, 그리고 각목으로 다소 복잡한 구조를 만든 후 서피스 작업들을 각목 구조물에 매달거나 그 사이에 비치한 새공간의 연출. 이곳에 사용된 백색 라인 조명은 노란색의 채도를 좀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강한 직선의 구조물과 각진 프레임을 돋보이게 하면서 평면보다 선적 요소가 강조된 좁은 공간에서 노란색은 위태로움에 대한 심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세번째 공간인 더인터넷에서 노란색은 경쾌한 리듬을 타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하이퍼링크로 연결되는 웹의 구성이 화면을 스크롤 할 때마다 끊임없이 꿀렁거리는 리듬을 타고,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따라오는 하얀 조약돌 형상은 꿀렁거리는 화면과 술래잡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온라인 상의 이 이미지들은 평면에서 추출되었겠지만 모니터 상에서 끊임없이 변형 되면서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이번 개인전 《고요한 웃음》(2023)에서 크리스 로는 좀더 다양한 색과 형상을 경쾌하게 펼쳐 보인다. 에이라운지 전시장 문을 열면 벽면과 바닥 곳곳에 위치한 작업들이 각기 고유한 표정과 리듬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는 대체로 관람객이 작품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작품들의 표정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다. 작품들이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기거하는 디스플레이 방식은 크리스 로의 이전 개인전들과 큰 차이가 없지만 벽면에 걸린 작품들은 각기 표정을 지닌 채 관람객을 맞는다. 그리고 이들의 시선이 모이는 전시장 중앙에는 짧은 다리가 많이 달린 두 개의 백색 평상이 전시장 바닥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 관람객은 이곳에 앉아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다. 또 바닥부터 천장을 지나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선들로 연결된 전화기들은 전시장 안에서 유선 통화를 할 수 있게끔 설치되었다. 이 모든 작업들은 공간 전체에서 면과 선의 반복과 변주가 리드미컬하게 펼쳐지고 중첩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즉 삼차원 공간에서의 작품들의 배치와 상호관계 역시 이차원 평면에서 이미지가 반복, 변형, 변주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한편, 크리스 로는 그가 작가로서 선보이는 작업들이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디자인 작업과 비교했을 때 스스로가 좀더 자유로워지며 혼을 담을 수 있는 작업이 되기를 원하였다.⁴ 무엇보다도 그는 미술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그런데 현재 그는 글쓰기에 심취해 있고 전시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바, 메시지 전달은 아니더라도 그가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연결하는 방식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개인전 《우리같은 도둑》(2021)에서부터 자신의 자전적 에피소드를 몇 편의 도둑 이야기로 발표하고 자신이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음을 고백했는데, 이와 더불어, 기존 작업들이 소리라면 글쓰는 작업은 가사일 수 있겠다는 비유를 하였다.⁵ 사실 그는 자신의 그래픽 작업을 소리에 빗대거나 텍스트와의 관계를 염두하는 발언을 자주 해왔는데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기존 그래픽 작업들을 ‘사운즈 시리즈’로 부른다고도 하였다.⁶ 그에 의하면 처음에는 어떤 메시지나 의도를 담으려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작업에 빠져들었지만, “네 작업을 보고 있으면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친구의 코멘트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사운즈 시리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즉 크리스 로의 일련의 그래픽 작업들은 표면이면서도 소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텍스트를 소리 없는 기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언어에 대한 그의 기본적인 인식은 소리 있음과 소리 없음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소리 없음 또는 침묵 또한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소재가 되는 것이고, 이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생각이 함축된 ‘고요한 웃음’이라는 이번 개인전 제목이 탄생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크리스 로의 글쓰기는 자전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졌다. 작가를 모르는 사람도 오토픽션처럼 읽을 수 있도록 작중 화자 또는 주인공은 크리스 로에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는 자신의 글을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거라고 말하는데, 익살스럽기도 하고 웃프기도 한 에피소드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미 그의 개인전은 한 편의 희곡이자 연극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작품 배치와 캡션 정보를 수록한 전시의 플로어 맵을 살펴보자. 흥미롭게도 크리스 로는 그동안 제작한 개인전 도록마다 플로어 맵을 수록해왔는데, 그의 플로어 맵은 작품의 공간배치에 대한 정보이자 기록이지만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연극 무대 위의 배우들의 위치와 동선, 캐릭터의 성격, 또는 그들의 대사나 지문을 제시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다. 넘버링이 된 작품의 제목마다 어떤 상황에 놓인 인물(우선적으로는 작가가 제일 먼저 오버랩 된다), 그리고 그의 경험과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 개인전의 <Fear of Speaking Of The Things I Wish For(내가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Believe Nothing Of What You Hear, And Only Half Of What You See(들은 것은 아무것도 믿지 말고, 본 것은 반만 믿기)>, 또는 <I Choose Not To Let My Circumstances Persuade Me Instead I Choose To Persuade My Circumstances(나는 상황에 의해서 설득당하기보다는 내가 상황을 설득하기를 선택한다)>와 같은 작품 제목은 해당 작품의 이미지보다는 전시제목 ‘고요한 웃음’과 연결되어 파악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플로어 맵을 참조하면서 해당 작품을 보는 관람객에게 이미지와 텍스트의 밀착 관계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매칭이 중요할 수 있지만 관람객에게는 전시된 이미지들 전반의 저변에 깔린 작가의 생각들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추상이라고 하는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이미지와 내러티브 즉 묘사를 담고 있는 언어가 결합될 때 발생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크리스 로의 이미지와 내러티브가 유리되는 관계는 아니다. 만약 개인전 《고요한 웃음》이 크리스 로의 모든 텍스트를 제거한 채 이미지만 제시된 전시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만큼 강한 묵언이 있을까? 그런데 크리스 로는 소리없음의 소리이든, 소리있음의 소리이든 이미지들에 소리를 담기를 원하는데 이것은 내러티브를 담은 소리다. 그의 글에 에피소드로 등장한 전화기 너머의 공기, 그 침묵, 그것은 소리없음의 소리이지만 내러티브를 담은 소리였다. 그리고 이 내러티브에는 유머가 중요하다. 작가는 개인전 글에서 오리너구리 연구 보고서에 대한 에피소드를 거론하고 자신이 오리너구리로 표상되는 아름다움과 유머가 동시에 있는 존재를 상상하면서 아름다움과 유머를 결합하는 시도를 하고자 했음을 언급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유머는 공존하기 어려운 일종의 이상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그 난관을 마주하는 것을 이 전시는 지향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시도가 ‘들리지도 않는 웃음’ 정도로 미약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의기소침에 깔린 익살로 보인다. 때로는 의기소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익살이 넘치기도 하는 유머, 그의 다이나믹한 유머는 전시 공간의 공기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표면 아래의 소리들 역시 전화기 너머의 공기처럼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¹ 할 포스터 외 지음, 배수희 외 번역,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서울: 세미콜론, 2007), 490.
² 위의 책, 488.
³ 크리스 로, 『우리같은 도둑』(2022, 서울: 소환사), pp. 12-15. (《우리같은 도둑》(2021.11.16-12.11, 서울: d/p)의 전시도록)
⁴ 위의 책.
⁵ 위의 책.
⁶ 『더 갤러리아 매거진』, 2023년 6월호, 159.


글/ 이성휘 Sunghui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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