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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ingle Night

마침내, 하나의 밤

[하나의 밤] 가로형4_갈색4

마침내, 하나의 밤 A Singl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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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분별되지 않을 만큼 어둡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깨어나 시끄럽게 뒤덮인 시간. 감각과 꿈이 뒤섞이고, 저마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전시 《마침내, 하나의 밤》은 그러한 시간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층적 세계를 당신에게 소개하려 한다. 그것은 눈으로 장악할 수 없는 세계, 그렇기에 언어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이며, 낯설기에 두렵고,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기에 불안한,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계일 것이다.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이 생명체마다 고유한 환경 세계, 즉 움벨트 (Umwelt)¹가 있음을 말했을 때, 그가 보여준 것은 세계가 하나의 객관적 무대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파편적 경험을 세계의 보편적 진리로 착각해온 오래된 오만에 대한 폭로이기도 했다. 어떤 감각도 세계 전체를 아우를 수 없다. 우리가 충분히 감각하지 못했거나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 총체적으로 열릴 때 세계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는 바람 자체가, 어쩌면 이 밤을 통해 무너져야 할 환상일 것이다. 누구의 감각도 온전하지 않은 이 시끄럽고 캄캄한 밤 속에서는, 아주 작은 확신마저 내려놓고 이 보이지 않음을 받아들이며 견뎌야 한다.

그 불확신 속에서 당신은 세계들의 경계를 — 느슨해졌을 뿐 여전히 존재하는 그 경계를 — 스스로 건너야 한다. 운동감각과 촉각, 시각을 넘어선 감각들을 가늠해보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상상하며, 그들의 세계를 기꺼이 방문해야 한다. 그 세계는 당신 반려견의 세계이자, 당신 정원의 세계이며, 당신의 오랜 기억을 담은 머그잔의 세계이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이토록 다른 세계를 살아가면서도 결국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며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의 몸을 이루고, 서로의 조건이 되며, 때로는 서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안에서 정서적 연대와 돌봄의 감각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세계로의 이동을 기꺼이 상상해야 한다. 세계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각자의 세계 안으로 서로를 초대하고 또 초대받으며, 접촉하고, 감염되고, 서로를 오염시키며 살아간다. 그러니 이제 이 밤, 인간의 인지와 감각으로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을 내려놓고, 알 수 없는 세계로의 이동을 상상해보자.

이 상상으로 당신을 안내하는 세 명의 작가가 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서로 다른 몸으로 살아온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인간의 감각만으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존재들의 시간을 화면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들은 비인간 타자들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거나 대신 말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세계와 비인간의 세계가 맞닿는 경계에서, 아주 짧게 발생하는 접촉의 순간을 붙든다. 그것은 시간이자 공간이면서, 또 둘다 아닌, 의지와 의식을 내려 놓은 몽롱함 속에서 아주 잠시 마주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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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세 갈리오토(Agnese Galiotto)가 안내하는 세계는 꿈의 세계, 즉 깨어있음과 잠들어 있음의 경계다. 그곳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선형적 시간이 흐트러진다. 당신의 발 아래에 잠들어 있는 개, 그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고양이와 닭들은 당신과 같은 표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머문다. 투명한 막이 그 사이를 가로막은 듯, 보고 있으나 다가갈 수 없는 그 세계에서, 아마 그들 역시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개의 꿈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세 개의 벽에 펼쳐진 흑백 에칭 이미지들처럼, 당신은 파편적 꿈의 이미지 중 하나가 된다.

그렇게 그림 속 세계,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이 세계는 당신의 세계로 침투해 들어온다. 그것은 이미 당신이 알아볼 수 있는 언어와 형상으로 번역되어 어느 정도의 틀 안에 놓여지지만, 동시에 끝내 번역되지 않는 잡음들을 품고 있다. 바로 그 불완전한 이미지들을 통해, 당신은 그들과 같은 찰나를 잠시나마 공유하게 된다.

그럼에도 당신이 아직 저들의 세계로 충분히 들어가지 못했다면, 당신의 상상은 어쩌면 그 표면 위로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또렷이 보이지 않는 풀잎들 사이, 그 아래 흙바닥에서 기어오르는 개미가 되어 더듬이로 방향을 가늠하고, 촉각으로 장소를 감각하는 상상. 길을 잃은 개미가 개의 털 사이로 파고들고, 어느덧 개의 꿈속에 도착하는 상상. 그 안에서 자신의 신체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전혀 다른 규모의 세계를 경험하는 상상. 그리고 어느 찰나, 그 작은 개미가 캔버스 속 이미지를 뚫고 나와 당신의 발 위로 기어오르는 상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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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세계로 진입한 당신이 건너야 할 다음 장소는 인간을 위한 배경처럼 존재해온 토양과 대기의 장소이다. 작가 이제는 이들의 움직임을 겹치고 섞어내며 버무리듯 표현한다. 그것은 초점을 이동시키며 대상을 구분하고 파악하려는 인간 시각의 운동성과는 다른, 제3의 눈을 상상하도록 한다. 지질의 감각, 기류의 감각은 아주 느린 시간 안에 머무르는 듯, 오래 눌리워진 카메라의 셔터처럼 모든 것들을 조용한 흐름 속에서 받아들인다. 그 안에서 인간이 겪어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몇 개의 선과 색으로 그렇게 스치듯 지나간다.
한편 당신이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 속 물질들로 초점을 맞추면, 이 거대한 시간의 감각은 안료 덩어리들의 표면 위로 안착하게 된다. 긁히고 다시 쌓아 올려진 표면과 밀려나고 다시 덮어진 흔적들 사이로 시간은 응축되어 결집되고, 그 거대한 힘이 아주 작은 분자들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것은 물질을 가진 이미지의 힘, 이미지의 주술적 힘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라는 오염된 몸이라야만 반응할 수 있도록, 인간에 의해 구성되어진 힘일지도 모른다.이제가 이번 작품들에서 이러한 물질성을 더욱 극대화하며, 표면을 뒤섞고 안정된 윤곽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 주술적 힘이 당신을 더 깊은 상상 속으로 안내하리라는 믿음—그 역시 오염된—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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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다시 갈리오토의 그림 위를 걷는다. 그림의 이미지는 희미해지고, 표면은 조금씩 닳는다. 그렇게 당신은 캔버스가 이 세계의 시간을 입어가는 과정을 목격한다. 이제의 그림이 이미지에서 물질로 다가왔던 것처럼, 여기서 당신은 캔버스라는 또 다른 존재의 세계를 상상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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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제 사물과 공간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이루는 환경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곳으로 건너왔다. 납작하게 그려진 이미지 속 사물과 구조물들은 고요해진 만큼 무겁고, 또 섬세한 세계를 보여준다. 마모와 압력, 빛과 온도, 반복되는 접촉과 가라앉은 듯한 시간들은 어디에, 어떻게 저장되는가. 표면에 남은 힘과 흔적들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이 되는가.
인간의 감각 세계 안에서 빠르고 가벼운 움직임으로 보여졌을 핀볼은, 자신의 세계 안에서 거대한 중력을 품은 물체처럼 구른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무게가 없는 사물처럼, 혹은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놓인 것처럼 낙하한다. 저 너머에 석양이 비추고 바다가 보인다. 이 기묘한 장소는 마치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다른 감각의 속도와 흐름을 지녔다. 거대한 시계바늘의 그림자가 공간 전체에 드리우고, 그 아래에서 사물들은 제 의지를 가진 듯, 자신의 마찰력을 스스로 이용하며 움직인다.
영상과 음악, 움직임과 소리의 데이터는 빛의 신호와 음향의 배열, 편집된 리듬과 디지털 이미지로 구성되어 당신 앞에 하나의 비물질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그 비물질성이 물질의 세계를 더욱 강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손에 잡히지 않는 데이터는 무게와 낙하, 충격과 진동을 불러내고, 부딪히고 닳고 밀려나가는 촉감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감각이 어디에서, 또 무엇을 통해 발생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비물질의 세계와 바깥의 물질, 즉 그림의 표면, 그리고 그 표면 위로 떠오른 또 다른 비물질로서의 이미지가 서로 교차할 때, 그들과 우리의 세계는 잠시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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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각기 다른 세계의 통로가 잠시 열리는 밤, 당신은 더 이상 하나의 감각에 기대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이미지는 물질처럼 무게를 얻고, 물질은 꿈처럼 흐려지며, 소리는 보이지 않는 표면을 더듬는다. 이 밤은 이해의 시간이 아니라, 감응의 시간, 또 상상의 시간이다. 당신은 개의 꿈을 알 수 없고, 대지의 촉각을 가질 수 없으며, 또 사물의 시간을 살아낼 수도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곧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며, 우리와 무관하다는 것도 아니다.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있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곳에서 당신은 관람자가 아니라 잠시 길을 잃은 방문자가 된다. 그리고 어쩌면 길을 잃는 일만이, 다른 세계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1) 움벨트(Umwelt) 개념에 의하면, 감각기관은 이미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장치가 아니라,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조건이 된다. 야콥 폰 윅스퀼, 정지은 역,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도서출판 b, 2012). 이러한 관점에서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 (Situated Knowledges)” 개념을 더한다면, 우리가 언제나 특정한 몸과 감각, 위치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지식을 축적하는 한, 완전히 객관적인 하나의 진리를 성립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각각의 부분적 지식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관계 맺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도나 J. 해러웨이, 「상황적 지식: 페미니즘에서 과학의 문제와 부분적 시점의 특권」,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아르테, 2023).

글/ 안민혜 (독립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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