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Hanging Paintings

매달린 그림

2025. 7. 9. - 2025. 7. 26.

[박다솜] 홈페이지42

매달린 그림, 회화 사건

"침묵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 우리의 입은
하릴없이 벌어져 있었다. 말에서 자유로워진 턱은
버려진 그네처럼 흔들거렸다."

- <무더위>, 올가 토카르추크 1)


회화의 신체성을 연구해 온 박다솜 작가의 개인전 《매달린 그림》은 감각의 연대로서 캔버스의 표면과 몸의 접촉지점으로서 피부를 포갠다. 덧댄다. 벗긴다. 단단하게 고정된 프레임 대신, 강선으로 잡아당겨 긴장된 캔버스의 모서리, 그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민감한 표면 위에 신체와 회화의 경계는 느슨해 진다. 그의 회화는 무게에 순응하고, 환경의 간섭— 중력과 마찰, 온도 —에 반응하며, 때로는 버티고 때로는 무너지고 항복하며, 캔버스 표면 위로 출몰하는 신체의 잔해를 연대의 언어로 삼는다. 천의 말림, 테이프의 이탈, 무게로 처지는 움직임까지— 이 모든 사건들은 회화의 일부이자, 신체의 일부로 연결된다.

비가 새는 집에서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장마가 오면 함께 찾아오는 ‘이번에도…’라는 걱정과 ‘이번에는…’이라는 작은 희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오래 전 한 배관공은 물이 지나온 길을 찾아 누수를 막으려면 소설 한 권은 써야 한다고 했다. 박다솜은 매일 아침, 벽에 붙여놓고 간 캔버스가 간밤에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살핀다. ‘떨어졌네…’ 혹은 ‘붙어있구나…’와 같은 안타까움과 안도감 사이를 오가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작가에게 캔버스는 떨어졌다면 떨어진 대로, 붙어 있다면 붙어 있는 대로, 저마다의 흔적과 형태로 계속된다. 땅에 떨어져 구겨진 주름을 따라 물감이 흐르고, 팽팽하게 당겨진 모서리를 타고 선이 자라난다. 그리는 행위와 그려지는 흔적의 반복 속에서 캔버스는 자유로운 순수 사건이 되고, 그 감각의 접촉 지점은 비시간으로 남겨진다.2) 어제의 자국은 점점 퍼지고,흔적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 구멍은 차츰 매워져, 그 겹침 사이로 스멀스멀 신체의 잔상들이 출현한다.

박다솜은 물질이 거스를 수 없는 -캔버스를 당기는 중력, 물감을 적시는 습기, 혹은 색을 바래는 대기와 같이- 물리적 힘과 예측할 수 없는 환경적 변화 앞에 처한 회화의 일상과 취약성을 보듬는다. 그에게 캔버스는 옷이나 이불, 혹은 장판과 같은, 마치 장(sheet)을 접고 구기고 자르듯이 질료의 처지에 순응하는 새로운 생명이다. 번짐은 그려짐의 실패가 아니고, 휨은 직선의 후퇴가 아니다. 물질이 반응하는 그대로 생동의 과정을 방법론으로 취하는 박다솜의 회화는 제인 베넷이 말한 ‘생동하는 물질’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회화의 표면은 살아 있으며, 그것은 단지 이미지를 담는 수단이 아니라, 감각을 전달하는 피부와 같은 접촉의 장치가 된다. 더 나아가 작가는 회화가 처한 취약함과 자신(인간)이 처한 그것을 동일시하면서, 물질을 통해 혹은 물질과 함께 애틋한 연대를 맺는다. 캔버스라는 물질을 단순히 벽에 걸지 못하고 그것이 그려질 당시의 물리적 상태와 최대한 유사한 방식으로 매달아 놓으며 작가는 그 고통을 몸으로 공유한다. 납작하게 접혀 눌린 몸을 펴고, 펼쳐진 피부로 솟아나는 힘줄과 충만하고 생동하는 내장에 도달하기 위해 더 깊고 날카로운 선을 도려내는 그의 물감은 고통의 진동, 소실, 신음, 미규정적이고 모호한 그 자체가 된다.

고통은 무엇을 ‘향한’ 것이거나 무엇에 ‘대한’ 것이 아니다. 고통은 홀로 존재한다.3) 고통은 자신을 대신할 수 있거나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없기에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삼키며 신음하는 입을 통해, 부르르 떨리는 손가락의 건들거림에서, 툭 튀어나온 뼈마디와 검게 그을린 멍자국에서 고통을 본다, 느낀다. 함께 한다. 어쩌면 고통이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오해인지도 모른다. 고통은 ‘우리의 언어를 변화시킨다 거나'4) 혹은 확장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속 표피는 단순히 ‘감각’으로서가 아니라, 자아의 흔적과 새로운 자아 사이를 오가며 쾌락과 불안, 잔여된 숨은 자아를 표면 위로 밀어 올린다. 이러한 표피의 성질은 캔버스를 ‘인간의 몸’처럼 대하는 박다솜의 회화 속에서 다시 발견된다. 전통적인 회화처럼 단단하게 고정된 틀 위에서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예민한 표면 위로 자신을 밀어붙일 때, 캔버스는 작가의 표피와 같이 외형과 내면 사이를 잇는 경계가 된다.

박다솜은 ‘5층집’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무더위 속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옥상을 향해 열린 창문 앞으로 잔잔한 찻잔과 와인잔, 그리고 흰 냅킨들이 놓여있다. 한쪽 구석에는 친구가 선물한 작은 모빌이 가늘게 매달려 있다. 언뜻 일상적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5층집’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이유는 그의 회화가 머금고 있는 고통의 본질이 내가 무심결에 떠올렸던 사회적 연대로서 고통이 아니었다는 어떤 변화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은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닌, 보이지 않지만 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강도, 속도, 물질의 떨림과 같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해 뜨거워지는 무더위 속에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러운 오늘, 지구라는 여기를 살면서 생명이란, 지복(더 없는 행복, 至福) 이라기보다는 공포로서 경험 되고, 잠재적인 것의 충만함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의미 없는 공백으로도 경험5) 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고통을 연대한다는 것은 행복을 종용하는 것 보다 오히려 덜 해롭고 덜 폭력적이다. 고통은 이제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생성과 접촉의 가능성을 품은 채, 조용히 숨 쉬며 우리를 변화시킨다.

1) 『낮의 집, 밤의 집』,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이옥진 옮김, 2020, 민음사, p. 278
2) 생동하는 물질에서 제인 베넷은 질 들뢰즈의 짧은 에세이 <내재성: 하나의 생명>을 소개하며, 하나의 생명은 “발생한 것의 주체성과 객체성으로부터 (…) 자유로운 순수 사건”이기 때문에, 찰나적으로만 가시적이라고 한다. 그에게 생명은 전기적이고 형태적인 시간의 다양한 순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기묘한 비시간에 거주한다. 『생동하는 물질』, 제인 베넷 지음, 문성재 옮김, 2020, 현실문화, p. 147
3)『고통받는 몸』, 일레인 스캐리 지음, 메이 옮김, 2018, 오월의 봄, p. 262
4) 『언다잉』, 앤 보이어 지음, 양미래 옮김, 2021, 플레이타임, 리시올 출판사, p. 235
5) 『생동하는 물질』, 제인 베넷 지음, 문성재 옮김, 2020, 현실문화, p.148

글/ 배은아 (독립 큐레이터)

박다솜 ≪매달린 그림≫ 1층 전시전경 - A-Lounge Contemporar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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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솜 ≪매달린 그림≫ 2층 전시전경 - A-Lounge Contemporar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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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솜 ≪매달린 그림≫ 2층 전시전경 - A-Lounge Contemporary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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