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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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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시장이 훨훨 타오르는 상황에서 아트페어 참가를 향한 경쟁률이 치열했던 것은 알고 있었다. “많은 갤러리들이 참가 신청을 했고, 기본적으로 협회 회원 갤러리들도 많은 상황이니,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아쉽기는 아쉽다”라는 생각을 하던 중 이번 전시의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트페어에 출품하기 위해 준비한 작품들을 전시를 통해 소개해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말이다. 추첨에 떨어진 상황에서 1863년 프랑스의 살롱전에서 낙선한 작가들이 개최한 «낙선전»을 떠올린 것도 사소한 이유일 게다. 물론 심각한 이유가 아니라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기본적으로 갤러리는 아트페어에 신청할 때, 참가할 때를 상정해 미리 준비를 시작한다. 작가들의 라인업과 선정된 작가들이 어떤 작품들을 출품할 지에 대해 말이다. 이번 전시는 여기에 참여작가의 규모를 좀더 확장하고, 내용 중심의 기획과 판매 중심의 아트페어가 섞인 형태의 ‘하이브리드’ 전시로 기획했다.

전시 제목은 ‘왓 이프!(What if!)’. '만약 아트페어에 참가했을 때 에이라운지가 어떤 작가와 작품을 선보였을까'를 상상한 결과다. 에이라운지의 예비전속작가인 박미라, 표영실, 한성우를 비롯해 그동안 에이라운지가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던 고등어, 지근욱이 참여해 라인업에 힘을 더했다. 모두 최근 동시대 한국 아트신(art scene)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최근의 아트페어는 1년이라는 짧은 호흡 속에서 미술의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장이다. 과거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아트견본시의 성격에서 더 확장되어 트렌드와 함께 담론의 깊이를 담는 2년 간격의 비엔날레, 3년의 트리엔날레, 5년의 카셀 도쿠멘타 등과는 다른 결이지만 더욱 역동적인 현장을 만들어 낸다. 미술의 흐름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친다는 우려 또한 있지만, 최근 미술의 트렌드를 살펴보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지금 여기’ 미술현장의 현상 또한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왓 이프!» 전시는 젊은 작가들이 활동하는 영역에서의 국내 미술 트렌드를 살펴보고, 결국 자생과 지속의 문제로 소급되는 미술 현장을 환기시킨다. 결국 작품을 팔아야 미술 생태계는 유지되니까 말이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새로운 미감을 드러내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연필 등 하나의 매체로 단색조의 드로잉 작업을 진행해왔던 고등어는 2021년에 새로이 유화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연필로 그린 드로잉 작업과 함께 유화 신작 2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른바 ‘메르헨(Märchen)’적인 내용을 화면 속에 풀어놓는다. 작가가 경험한 내밀하고 심리적인 상황은 기묘한 혹은 불길한 풍경으로 변환된다.

박미라 또한 단색조의 화면을 통해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이러한상상의 세계에 ‘아니마(anima)’, 생명을 불어넣는다. 즉, 상상의 세계가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통해 매체의 확장을 꾀한다. 도시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 싱크홀, 홍수 같은 재난 등의 상황은 작가 만의 상상력을 거쳐 낯설면서도 익숙한 세계로 재창조된다.

지근욱은 정통적인 옵아트의 계보 속에 작업을 놓는다. 그는 사각형의 캔버스를 곡선 자를 대고 색색의 펜으로 치밀하게 채워나간다. 이렇게 그가 펼쳐놓은 화면 속 곡선의 흐름은 그 방향과 흐름에 따라 화면 속 긴장의 강도가 자유자재로 변한다. ‘형식주의(formalism)’의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가의 작업은 끊임없이 긋는 곡선의 노동과 함께 ‘신체성’이 추가된다. 손으로 끊임없이 반복해 완성된 선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긴장과 평안함이 공존함을 느끼게 된다.

표영실은 보이지 않는 감정, 손에 잡히지 않는 심상, 기억 등 형상이 없는 대상에 형상을 만든다. 이러한 형상은 작가만의 섬세한 감수성과 자유로운 상상의 결과물로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놓은 작가의 작업 노트에는 인간의 멜랑콜리가 드러나는 단어로 꽉 차있다. 이성보다는 언어를 통한 감수성, 감각이 작가의 화면을 관통한다. 세밀하게 그린 화면 속의 ‘형상없는’ 형상은 가볍지만 묵직한 울림을 보는 이에게 던진다.

지난 해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 한성우는 기존의 두터운 마티에르의 추상 작업과 더불어 조금 다른 작업의 방향성을 시도했다. 두텁지만 매끄러운 화면, 좀더 화려해진 컬러의 화면은 구상적이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한, 보는 이로 하여금 좀더 상상의 나래에 여지를 남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얇은 붓질을 느낄 수 있는 인물화, 화려한 오일파스텔과 수채화 또한 작가가 고민하는 작업의 다음 단계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획에 대한 힘을 좀 빼고, 작가들의 신작과 동시대 미술의 현장을 소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미래를 상상하고 과거를 회상한다. ‘만약 이랬다면, 만약 저랬다면’… 결국 ‘만약(what if)’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상의 세계다. 그리고 기원, 바람(wish)의 세계다. 결과론적이지만, 에이라운지의 «왓 이프!» 전시 또한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에 대한 상상의 결과다.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또다른 기원과 바람을 생각하기에, 전시에 ‘느낌표(!)’를 붙였다. 이 느낌표가 아마 이번 전시의 또다른 바람을, 그리고 실현을 대변할 것이다.

글 /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전시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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