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와정의 언어를 체험하기


김목인(싱어송라이터)

전시 글을 부탁받았으나 로와정의 전시를 본 횟수는 극히 부족했던 나는 작가의 권유에 따라 우선 홈페이지에 잘 정돈된 작업 기록들을 보았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수업 시수를 채우는 느낌?), 어느덧 나는 작품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고 간간히 스크롤을 멈춘 채 미소를 짓기도 했다.
왜 미소를 지었던 걸까? 작업이 건네는 무언가를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사실 내가 재미있었던 건 나 역시 음악 작업이란 것을 하고 있지만 로와정의 세계에서 ‘작업’이 될 수 있는 대상은 정말 활짝 열려있구나 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허공에 붙여둔 마스킹 테이프부터 전시장 구석에 놓아둔 안경, 옷에 생긴 구겨진 자국까지 온갖 것이 ‘작업’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한참 재미있게 들여다보던 나는 점점, 이것 역시 작업의 일부인가 상상해 보게 되었다. 이것 - 내게 전시 글을 맡긴 것. 
거기에는 가령, 이런 해설(로와정 스타일의)을 붙일 수 있겠다.

“김목인(이하 김)은 10월 어느 날부터 말일까지 로와정의 전시 글을 쓴다. 집필은 로와정을 방문해 티타임을 가진 날부터 시작한다. 로와정은 그간 자신들의 전시를 많이 보았는지, 홈페이지로라도 보았는지 묻지 않고, 편안히 부담 없이 쓸 것을 주문한다. 김은 로와정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으며 필요한 자료 역시 요청할 수 있다.”

로와정의 작품 전반에 담긴 위트와 자유로움에 동화된 나는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티타임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웬걸, 글은 좀처럼 틀(로와정이 몇몇 작품으로 드러냈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서 물감 묻은 탁구공을 주고받듯, 손가락이 아닌 몸으로 타이핑하듯 글이 써지면 좋겠다 싶었다(나는 지금 비유를 통해 로와정의 작업들을 좀 보았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아니면, ‘캔버스가 다른 캔버스의 뒷면을 그리듯’ 써보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내가 로와정의 작업을 처음 실제로 보게 된 것도 전시 때문이 아니라 작업실 옆방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전시중인 작품보다는 철거중(?)인 작품을 더 많이 본 셈이다. 로와정의 공간과 작품의 ‘뒷면’을 보며 난 신기함에 고개를 끄덕였고, 현대미술가에게는 공구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과 전시가 끝난 설치작품의 보관은 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전시 글인데 그런 이야기만 쓰기는 싫었다.
로와정의 일부 작품처럼 유희가 자연스레 작품이 되었던 경험을 써볼까도 싶었다. 가령, 내가 로와정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내 친구 날씨가 이들의 작업(낭송 음원을 모으는 것)을 돕고 있어, 낭송자로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이(당시 6살)는 로와정이 누구인지, 이게 무슨 작업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읽었다(특히 아이가 맡은 부분은 ‘너도 미쳤고, 나도 미쳤고, 우리 모두 미쳤다’는 꽤나 신나는 구절이었다). 
얼마 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은근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광주의 친척들이 시간 되면 보러 간다며 어떤 작품이냐고 물었을 때에는……
아니, 그런 것보다 어느 비 오는 날 드디어 ‘전시장’으로 로와정 작품을 보러 갔던 기억을 써볼까도 싶었다. 마침 그날 전시된 작품들은 크기가 작은 편이었고, 난 위층에도 전시가 이어지는 줄 알고 너무 빨리 봐버렸다. 위층에 더 없는 걸 알고 한 번 더 봐야 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벽 한 쪽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내게 실내온도가 적당한지 물었다. 적당하다고 하니 다시 문이 닫혔고, 그 문 위를 지나는 마스킹 테이프 또한 로와정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너무 작품 자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글 같았다.

나는 다시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로와정의 언어에 적응했다. 나에게서 로와정의 어법을 닮은 글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거기에는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작품들도 있었고(<도미노>나 <공간 드로잉>), 능청스러울 만큼 태연한 작품들도 있었다(<조용한 삶>, <검은 방명록>). 의외의 사소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있었고(<만담>, <움직임>), 지금 이 글처럼 ‘과정이 작품인 작품들’도 있었다(<붙이고 떼어내기>, <그리고 찍어내기>).
그래. 나는 이 글을 작업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티타임 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미묘한 여운이 남았던 대화.

나 : 제가 ‘무슨’ 요즘 미술 쪽 흐름을 ‘좀’ 안‘다거나’ 해서, 비교를 해가며 쓴‘다거나’ ‘뭐’ ‘그런 건’ 못 할 것 같고요……
로와정 : ‘아이고’, 그런 거라면 목인 씨에게 맡기지도 않았죠. 
(작은따옴표는 작품 <만담>을 생각한 것이다)

비로소 무언가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 나는, 내가 현대미술 작품을 이렇게 유심히 본 적이 있었나 싶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관람 경험이 적어 걱정이었던’ 관객이 ‘전시 글’을 맡으며 ‘뒤늦게 그 작품언어에 익숙해져가는’ 참여 형식의 작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해설이 어울릴 것 같았다.

“티타임 이후 로와정은 김에게 2개의 상반된 메시지, ‘마감은 10월 말일’과 ‘부담 없이 편하게 써주세요’를 전송한다. 그리고 집필이 한결 편안하도록 이 전시가 신·구작을 망라하는 특별한 전시라는 것, ‘rrrr’이라는 의태어를 제목으로 정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글쓰기가 끝나면 로와정은 글을 받아 거기에 담긴 방황과 긴장, 깨달음의 흔적들을 기록하고, 현대미술이 준 영향을 관찰한다. 이 글은 평소에는 ‘전시 글’처럼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