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윤(독립큐레이터) 

김덕훈은 여섯 번 째 개인전 <모노리스(Monoliths)>를 통해 2015년부터 현재까지, 작업 세계 전반을 횡단하며 조망한다. 지금까지 열린 개인전에서는 대체로 같은 소재나 주제를 공유하는 작품을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시리즈와 함께 과거에 제작한 시리즈에서 파생된 신작을 함께 제시한다. 다시 말해, 2015~2016년에 선보인 버드나무 시리즈, 2018년 전시한 뉴욕 시리즈, 2019년 소개한 영화 시리즈, 2020년 제작한 정물화 시리즈를 모두 볼 수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그가 이번 개인전에는 이전 개인전에서 제목을 붙인 방식- (2015), (2016), (2017), <액체는 고체를 꿈꾸는가>(2018), (2019) 등 그가 작품의 소재로 다룬 대상과 연관 있는 제목을 붙였던 것-과는 달리, <모노리스>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다. 모노리스란 고대에 만든 거대한 돌기둥을 지칭하는 단어로, 기념비적 성격의 거대 구조물을 일컫는다. 모노리스는 인간 이외의 어떤 생명체의 도구로, 어떤 생물의 진화를 촉진 혹은 멸종시키기 위한 것도 있어, 돌로 이뤄진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하나의 컴퓨터 같기도 하다. 이는 그가 그린 대상과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그린 대상을 통해 의미를 읽어내는 것보다는 왜 그리는지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그는 흰 종이 위에 일반 흑연 연필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길게는 몇 달의 시간을 들여 연필로 그린 선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그렇게 회색 조의 그의 그림은 깊이감을 가지게 되며 어느새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그의 작업실은 아주 조용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회화 작업하는 작가라면 모두가 지독한 고독을 견디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게 되지만, 종이와 연필, 지우개가 전부인 그의 작업실에는 지독한 테라핀 냄새도, 끈적끈적 흔적을 남기는 물감 자국도, 씻지 않아 딱딱하게 굳은 붓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무실 같은 무색무취의 공간에 그가 있었다. 그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작품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작품 속 풍경은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었으며,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듯 시간이 멈춰 있었다. 흑백으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관객 개인의 감정적 동요를 주지 않는 대신, 단호한 어조로 사실을 적시한다. 

앞에서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왜 그리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기술한 바 있다. 그것을 살피기 위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그린 대상들을 다시 주목하게 된다. 먼저 에 그려진 버드나무, 의 분재, 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자. 세 작품 모두 ‘나무’를 다루고 있지만,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는 화분에 심어 보기 좋게 가꾼 분재로 진짜 나무의 모양과 흡사하지만, 명백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고, 는 작품명은 나무지만, 형태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모양을 가꾼 형태이며, 는 가장 실제 풍경과 가깝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가 역시도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삼았다는 점에서 현실과 거리감을 찾을 수 있다. 에서는 물에 반사된 나무와 하늘의 풍경이 대칭적으로 그려져 초현실적 감각을 일깨우고 있고, 수조 안의 모습을 그린 에서는 실제 호수에서는 볼 수 없는 수초와 물고기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화장품 통을 세워놓고 그린 와 마천루로 가득한 홍콩의 도시 풍경을 그린 <22.2816 114.1512>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는 대상임에도 형태적 유사성에서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덕훈은 작업 노트에서 “나와 너,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식물과 동물, 수많은 종과 개체들. 끝없이 나뉘어 있지만, 모두가 하나의 돌로 이뤄진 세계의 일부이며 존재론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있다”라고 썼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좌파와 우파, 주류와 비주류, 부자와 가난한 자, 선과 악… 김덕훈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특히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적이고 진짜 같은 것이 가짜이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인위적인 대상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덕훈이 만들어내는 세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고, 상처를 받는 사람도 없다. 그 평화로운 세계에서 김덕훈의 연필은 오늘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