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대화 Daydream believer
2020.5.28~6.20 | A-LOUNGE

삶의 중심에서 예술 속 ‘꿈의 대화’를 나누다

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14세기 중반 유럽에 역병이 퍼졌다. 페스트라고 불리는 이 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독특하게도 이후 그림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1) 미술기법과 재료의 발전도 영향을 끼쳤지만,당시 역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을 그림을 통해 추모하고 내세의 안녕을 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미술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6백여 년이 흐른 2020년 초, 지구상에 또다른 역병이 퍼졌다. ‘코로나 19’라 불리는 미지의 역병이다.

운전을 하면서 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에서 이 전시가 시작되었다.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 … / 아침엔 꽃이 피고 밤엔 눈이 온다 / 들판에 산 위에 따뜻한 온 누리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석양이 질 때면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언덕에 올라 / 나즈막히 소리 맞춰 노래를 부르자 / 작은 손 마주잡고 지는 해 바라보자 / … /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엔 / 마음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 너와 나 너와 나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이범용, 한명훈이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선보인 노래, <꿈의 대화>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격동의 시기 속에서 삶에 지친 이들에게 꿈을 통한 희망을 전했다. 그리고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 희망에 부풀었던 2000년 대를 맞이했지만,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경제의 팍팍함, 획일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은 여전히 우리를 지치게 한다. 특히 2020년 들어 퍼지고 있는 미지의 역병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조차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꿈’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꿈은 예술 속에서 다면적으로 소통하고 읽히고 해석된다. 우리가 미술을 해석하는 데 큰 빚을 지고 있는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는 꿈을 욕망의 이면으로 보았고, 바슐라르는 꿈을 상상력과 이미지로 사유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드러내는 꿈의 세계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꿈의 대화> 노래에서 이야기하듯이,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가 관객들에게 되도록이면 직관적으로 다가가기를 바랐다. 미술을 통해 위안과 희망의 꿈을 꿀 수 있길 바랐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눈 앞에 권남희의 <역에서 만나자>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권남희의 작품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작품과 나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다. ‘꿈의 대화’이자 공감의 대화다. 권남희 작업의 요체는 소통과 공감이다. <역에서 만나자>와 <당신이 울 때, 나 또한 울 것이다(When you cry… I will cry too…)>는 만남과 이를 통한 소통과 공감을 예술적 경험으로 동화시킨다. 

작업 속에 독특한 유머를 심어놓은 심아빈은 전시장 곳곳에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인다. 화면 속의 손이 움직이는 시계추를 잡으려고 하지만 실현할 수 없는 <너와 나>, 세밀한 시계 장치가 그려진 캔버스 뒷면에 실제로 시계바늘이 움직이고 있는 <내가 하는 것> 등은 반전의 유머를 관객들에게 던진다. 특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구 주위를 시계바늘이 돌고 있는 작품, <시계 방향으로>는 ‘어쨌든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낸다.

왕선정은 그로테스크한 꿈과 환상의 세계를 화폭에 담는다. 다양한 색을 통해 작가는 감각과 감정의 층위를 구축한다. 이 색의 감정으로 쌓여진 층위는 작가가 창조한 화면 속 새로운 세계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녹색 톤으로 뒷모습의 남자가 그려져 있는 <그 남자 연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모호하지만 색다른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임현정이 화면 속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흡사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풍경과 비슷하다. <트립 알토나(Trip Altona)>, <환상적인 불상들과 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남산풍경(Fantastic Buddhas and Where to Find Them 남산풍경)>의 화면 속에는 작가의 내면 속 꿈과 상상의 풍경이 아기자기한 동화 속의 세계처럼 펼쳐져 있다.

최은혜가 제시하는 화면 속 세계는 이른바 이상 속 세계를 떠오르게 한다. 작가는 화면 속에 공간과 시간이 공존하는 ‘연속적 다층 공간’을 흩뿌려놓는다. 무채색에 가까운 은은한 채색과 이를 관입하는 컬러는 다층적 세계 속에서 공명한다. 이 공명하는 다층적 세계는 역설적이게도 묘한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600여 년 전 휘감았던 역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그림을 통해 내세의 위안을 삼았다면 2020년의 우리는 <꿈의 대화> 노래처럼, <꿈의 대화> 전시를 통해 꿈과 예술을 서로 공유하고 삶의 희망을 불러낼 수 있을 게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외로움과 서러움 없이, 서로 마음깊은 곳에서 소리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희망을 외치고 싶은 요즈음, 우리는 예술이라는 꿈을 꾸고, 꿈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깊은 밤을 지나 화창한 아침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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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양정무, 『상인과 미술-서양미술의 갑작스러운 고급화에 관하여』, 사회평론, 2011, pp.59-68